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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공부

티베트 불교 인물 - 체까와 예셰('chad kha ba ye shes rdo rje) 도제의 생애

by simsim_s 2020. 7. 23.



원문

The Treasury of Lives : Chekhawa Yeshe Dorje

https://treasuryoflives.org/biographies/view/Chekhawa-Yeshe-Dorje/5791

번역 : 자홍(심심불교)

 

'체카와 예셰 도제 (와일리 : 'chad kha ba ye shes rdo rje)'는 1101년, 즉 2번째 60년 순환력의 쇠-뱀의 해에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팍빠 꼅('phags pa skyabs), 모친은 쇠남 끼(bsod nams skyid)라고 하였다. 일족의 이름은 '자(bya)' 였는데, 때로는 이것이 예셰 도제의 출생지의 명칭이라고도 한다.

 

소년 시기에 예셰 도제는 로로(lo ro)에서 레충빠(미라래빠의 제자로 널리 알려진 그 분. 1085-1161)의 제자가 되었으며, 21세의 나이에 로로 싱싸르(lo ro zhing gsar)에서 '켄뽀 쩨웨르와'와 '착 린첸 창' 혹은 '롭뽄 닥뽀 짱둘와'를 모시고 사미계를 수계하였다. 이때 '예셰 도제(지혜의 금강)'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또 '샤미와 몬람와르, 1085-1171)'는 율과 관련 주제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다.

 

스승 레충빠를 녤(gnayl)의 '응옥 로짜와(mgog lo tsA ba)'가 이끌고 있던 '응오르 제쭌 보라(ngor rje btsun bho ra)'의 수행 공동체로 전송하던 과정에서, 예셰 도제는 응옥 로짜와 공동체의 가르침에 감명받았다. 그리하여 구족계를 받고자 하였고, 마침내 1123년에 '차롱 조뗀(tsha rong jo stan)과 '샹 셰럽 띵(zhang shes rab spring)', '닥뽀 짱둘와(dwags po gstang 'dul ba)'에게서 23세로 구족계를 수계하였다.

 

예셰 도제는 많은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게셰 쩬(dge bshes btsan)'은 미륵보살의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Mahāyānasūtrālaṅkāra)을 6회 강론하였으며, 다시 '자율와(bya yul ba)'와 함께 예셰 도제에게 인도 문헌에 의거하여 광범위한 일련의 가르침을 전하였다. 레충빠는 미라래빠(mi la ras pa, 1040-1123)의 밀교 가르침을 전하였으며, '게셰 냥착 싱빠'에게서 '로종(blo sbyong)'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여기에는 '랑리 탕빠 도제 셍게, 1054-1123)'의 '여덟 게송 가르침(tshig byad pa)'이 포함되었다. '게셰 룩메빠'에게서 '네우 수르빠 예셰 와르(1043-1118)'의 전통에 따라 람림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후로는 연기(緣起)와 관련 주제에 대해 주석적인 가르침도 전수받았다.

 

1130년에 예셰 도제는 랑리 탕빠를 만나기 위해 라사로 여행을 떠났으나, 안타깝게도 랑리 탕빠는 입적한 후였다. 대신에 예셰 도제는 '샤라와 욘뗀 닥(1070-1141)'을 만나 16년을 함께 지냈고, 이 중에서 8년 간은 샤랴와가 주석하는 사찰에 머물렀다. 샤라와는 13년에 걸쳐서 광범위한 로종의 가르침을 전하였고, 더불어 '아띠샤 디빰까라 스리즈냐나(980-1054)'와 수제자들 간의 비전 수행이었던 '자타를 교환하는 수행(tib. bdag gzhan mnyam brjes)'의 방법을 포함하여 다른 여러 가르침을 전수하였다. 샤라와의 문하에서 예셰 도제는 까담빠(kadampa) 전통의 크게 주목받는 스승이 되었다. 특히 슝빠(gzhung pa) 전통의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그외의 스승으로는 '게셰 돌빠', '다이 소탕빠,' '게셰 착리와' 그리고 '몬람 와르(sha mi sgom chen smon lam 'bar, 1085-1171)'등이 있다.

 

샤라와가 열반에 들자, 1141년 예셰 도제는 그 뒤를 이어 가르침을 폈다. 현밀(現密)의 다양한 주제를 가르쳤고, 람림(lam rim, 道次第)을 가르칠 때는 샤라와의 강해를 근거하였다. 예셰 도제는 '수심칠요(修心七要, blo sbyong don bdun ma)'이라는 제목의 논을 작성하였다. 예셰 도제의 주요한 제자로는 '세찔 부와 최끼 겔첸 (se spyil bu ba chos kyi rgyal mtshan, 1121-1189)'이 있다.

 

1141년 혹은 1142년에 예셰 도제는 라사에서 북동쪽으로 70km 정도 떨어진 멜도(mal gro)에 '체카('chad kha)사(寺)'를 건립하였다. 법호인 '체카와'는 여기서 유래하였다. 이 승원에는 900명의 승려들을 수용했다. 예셰 도제가 체카사(寺)에 얼마나 머물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열반에 들 때까지 34년을 보냈다고도 한다. 다른 문헌에서는 11년 후에 떠났으며, 새로운 체카사(寺)를 또건립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멜도에는 두 곳의 체카사(寺)가 있다. '체카 닝마(구 체카사)'와 '체카 싸르마(신 체카사)'이다. 예셰 도제는 생애 후반에는 '자두르모(bya dur mo)'라고 물리는 장소에서 은거 수행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생애 마지막 8개월은 타푸르(mtha' phur)라고 불리는 장소에서 아마도 명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1175년, 세번째 60년 순환력의 나무-양의 해에 75세로 예셰 도제는 열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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