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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공부

강박사고에서 벗어나는 방법 - 사유중지의 경

by simsim_s 2021. 5. 9.

 

강박사고란?


강박사고란, 원치 않은 생각이 자꾸만 일어나서 괴로운 신경증의 증상이다.

예를 들어 자꾸만 불안한 생각, 파괴적인 생각 등을 하는 것이다. (친한 이를 해치려는 생각, 자꾸 무엇인가를 반복적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생각, 내가 뭘 저지른게 아닌가 하는 불안 등)

강박사고가 일어나면 원치 않고 불쾌한 생각이기 때문에 이것을 중지시키고 싶어진다.

그래서 그 원인을 따져보기도 하고, 그것에 대해서 고민을 거듭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증상이 더욱 심해진다.

강박사고가 더욱 빈번하게 심하게 일어나기도 하고, 고민을 거듭하면 마치 뇌가 부은 것처럼 극심한 피로와 괴로움이 느껴진다.

 

강박사고를 치료하는 방법


강박사고를 치료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유투브에서 전현수 박사님이 불교방송에서 강박증 치료에 관한 불교적 관점을 강의하신 내용을 보았다.

 

www.youtube.com/watch?v=sWQuuYKhp_g

 

 

위 말씀의 내용을 내가 이해한대로 정리하면 이렇다.

 

강박증 발생의 원인

  1. 심신의 건강하지 못 한 상태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2. 강박증이 쉽게 발현되는 선천적인 기질
  3. (건강하지 못 한 상태와 기질이 있는 상태에서) 강박증을 일으키게 하는 주변상황

 

강박증 발생의 과정

1. 심리적 관점

정신적 습관의 일종. 마음은 항상 특정한 대상을 소유하는데, 그 과정에서 마음 자체에 방향성이 형성된다. 즉, 반복해서 같은 맥락의 사고를 하게 되면 그 맥락의 사고가 더욱 일어나기 쉽게 된다.

2. 생리적 관점

본래 위기감지나 계획 등을 하는 뇌의 기능들이 과잉작용,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 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위기상황을 탈출하려는 작용을 하거나, 그 작용이 불시에 과다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강박증을 해결하는 핵심 원리 : 마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자.

  1. 마음은 끊임없이 대상과 관계한다.
  2. 마음은 한번에 하나의 대상과만 관계할 수 있다.
  3. 마음의 작용이 반복되면 경향성이 형성된다. 이 경향성은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

 

 

'사유중지의 경(Vitakkasanthanasutta)'


강박증 치료와 연관된 불교 경전에는 '사유중지의 경(Vitakkasanthanasutta)'이 있다.

 

- 사유중지의 경 전문 : soonil.org/board.php?board=colum&category=&menu=05&tname=%BF%C0%B4%C3%C0%C7%20%B8%BB%BE%B8&command=body&no=10870

 

https://soonil.org/board.php?board=colum&category=&menu=05&tname=%BF%C0%B4%C3%C0%C7%20%B8%BB%BE%B8&command=body&no=10870

 

soonil.org

출처. 전재성 역. 맛지마 니까야 제1권 제2품 사자후 20. 사유중지의 경

 

이 경에서 제시하는 '강박사고(불건전한 사고, 고통스러운 사고)'의 중지 방법은 이러하다.

5단계로 이루어지며, 앞 단계에서 중지할 수 없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1. 선한 인상, 긍정적인 사고를 일으킨다.

강박사고의 내용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불교적으로 볼 때 부정적 사고는 탐욕, 분노, 무지함의 3가지 근본번뇌와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자해나 자살에 대한 강박사고는 스스로와 주변 환경에 대한 분노와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 불안심리는 불안함과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 비관적인 사고는 성공에 대한 탐욕과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

선한 사고와 인상은 대부분의 부정적인 강박적 사고의 내용에 대응할 수 있다.

다른 이를 위한 기도의 습관, 연민심, 자애심의 계발은 대부분의 폭력적인 사고에 대응할 수 있다.

무상함에 대한 사유는 대부분의 탐욕적인 사고에 대응할 수 있다.

분석해보면 실체가 없다는 성찰은 대부분의 무지함의 사고에 대응할 수 있다.

폭력적인 강박사고가 일어나면 오히려 자애심을 계발하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으니 이익이라고 생각하라. 나에게 자기 발전과 수양의 기회를 주었으니 얼마나 좋은 증상인가!

경에서 이러한 방법에 대한 비유로

'마치 숙련된 미장이나 그의 도제가 작은 쐐기로 커다란 쐐기를 쳐서 뽑아 제거하는 것처럼'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커다란 쐐기(부정적인 강박사고)를 맨손으로 한번에 제거하려고 하면 불가능하다. 너무나 깊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섣불리 접근하면 손을 다치게 된다. 그러나 반복해서 살살 작은 쐐기(선한 인상과 사고)로 때리면, 처음에는 변화가 없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툭 하고 커다란 쐐기가 빠져나가게 된다.

 

2. 그 사고가 해롭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한다.

본질적으로 사람은 이기적이므로 자신에게 좋다고 생각되는 것을 반복하고 싶어하고, 자신에게 해롭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혐오감이 드는 습성을 이용한다.

그 강박사고가 그 자체로 자신에게 해롭고 손실을 준다는 것을 인식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강박사고의 내용에 대해 평가하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강박사고의 내용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강박사고로 인해 내가 피해를 보고 있고, 나의 즐거움과 이익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는 고통을 유발한다."
"마치 젊고 생기발랄하고 장식을 좋아하는 남자나 여자에게 뱀의 사체나 개의 사체나 사람의 사체를 목에 걸어주면, 놀라고 치욕스러워하고, 혐오하는 것처럼"

이 비유는 그 사고의 내용을 다시 평가하고 곰씹으며 그것을 혐오하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렇게 하면 다시 강박사고의 늪에 빠지게 된다. 내가 원해서 그 사고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닐테니까.

여기서 핵심은 '내가 강박사고를 하고 있다.'는 그 자체를 해롭게 여기는 것.'이다.

강박사고의 내용에 대해 평가하는 것과, 강박사고 그 자체를 해롭게 여기고 하지 말아야겠다고 여기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왜냐하면 강박사고의 내용을 다시 반추하며 생각하고 평가하는 것은 강박사고의 연속성에 있는 같은 맥락의 강박사고의 연속이지만, 반대로 그 강박사고작용이 일어나는 것 자체의 해로움을 인식하고 그만두려고 하는 것은, 강박사고를 실질적으로 멈추는 '행동'이고 '재습관화'이기 때문이다.

 

3. 그 사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1과 2의 방법은 단기간에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은, 재습관화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방법에 더해서, 강박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할 때는 그저 무시하고 그것을 신경쓰지 않는 훈련도 필요하다.

"마치 눈 있는 자가 시야에 들어온 형상을 보지 않고자 원하면, 눈을 감거나 다른 곳을 쳐다보는 것처럼."

그냥 눈을 감거나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별 중요하지 않은 것을 보듯이.

이것은 일견 문제의 원인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보통 어떤 심리적 문제가 일어나면 그것이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서 발생한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는가?

물론 그말도 맞다. 어떤 강박사고가 습관적으로 발생한다면 그러한 습관이 생겨나게된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당장에 해결할 수 없는 불안과 걱정, 우려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박사고로 이어지는 경우에 대부분 '그 걱정, 우려와 스트레스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걱정하고 우려해도 그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당장에 좋아질 수가 없다.

그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알고 있음에도 그 사실을 수용하지 못 한다.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는 노력가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인생의 많은 문제, 아니 대부분의 문제는 사실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

예를 들어 늙지 않을 수가 없고, 병들지 않을 수가 없고, 죽지 않을 수가 없다.

역사의 큰 흐름을 개인이 바꿀 수도 없도, 내게 비호의적이고 무례한 사람들을 바꿀 수도 없다.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이미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강박사고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그것이 해결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기에, 그러면서도 뭔가 방법이 없을까 끊임없이 속을 썩히다보니 결국 강박사고의 습관화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강박사고는 보통 맥락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실 맥락이 없다고 하지만 맥락이 없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생리학적인 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뇌의 경고와 평가 기능이 오작동이다.

본래라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능으로 작동해야 하지만, 그 기능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마치 시동을 건 채로 브레이크를 걸어둔 자동차가 공회전하듯이

이 기능이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기능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가난하고 미래가 불투명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청년이 역시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못 한 부모에게 의탁해서 살고 있다. 겉보기에는 관계가 나쁘지 않지만 실상 가족 구성원들의 내면에는 경제적 불안감이 팽배하다.

그 상태에서 그의 뇌는 늘 고민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나 대부분의 경제적 문제가 그러하듯이, 당연히 당장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스스로 그 사실을 알고 좌절하게 된다.

그런데 노력가인 그의 뇌는 여전히 작동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잠깐이라도 뇌에 여유가 생긴다 싶으면, 그의 뇌기능은 다시 돌아기기 시작한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뭔가 해결할 수 없을까? 이 고통스럽고 견딜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없을까?

24시간 깨어있는 내내 그의 사고는 반복해서 작동하고 마침내 부하를 일으킨다.

그리고 오작동이 시작된다.

인과관계가 왜곡되고 엉뚱한 맥락화가 시작된다. 그는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 폭력적인 강박사고를 일으키게 된다.

이 사고의 내용은 가족을 누구보다 아끼는 그로서는 당황스럽고 몹시 두렵고 불안한 생각이다.

그는 가족을 정말 해치고 싶은 것일까?

정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애정과 걱정이 그의 경제적 불안과 뒤얽히면서, 그의 뇌작용이 엉뚱한 맥락화와 인과적 연결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즉, 가족이 원인이 되어 현재의 괴로움을 겪고 있다고 멋대로 해석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뇌기능은 어떻게 판단을 내리겠는가? 가장 쉬운 방법.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혹은 가족의 존재를 지움으로써 당장의 불안과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애정과 이성은 이것을 용납할 수 없다.

그리하여 그의 뇌기능이 반복해서 왜곡된 오작동을 계속 일으키고, 이것을 괴로워하며 해결방법을 고민하는 강박사고의 전형적인 사이클이 발생하게 된다.

여기서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러한 사고를 일으키게 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해결되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쉽게 이루어질 수 없다.

여기서 제안되는 것이, '그냥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해서 잘못이 아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확실히 납득하게 된다면, 당신은 자신의 강박사고의 내용에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서서히 강박사고의 발생빈도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오작동, 과잉작동으로 부하가 걸려있는 당신의 상황해결의 뇌기능이 상황을 문제라고 더이상 인식하지 않게 됨으로써 작동을 정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4. 사고를 반대로 한다.

네 번째 방법은 사고를 정반대로 하는 것이다.

이것은 습관화를 강제로 끊어버리는 기술이다. 경에서 말하는 비유를 보자.

"마치 여기 사람이 급히 가는데 ‘내가 왜 급히 가는가? 오히려 천천히 가보자.’라고 생각하여 천천히 가고, 또한 ‘내가 왜 서있는가? 오히려 앉아있어 보자.’라고 생각하여 앉아있고, 또한 ‘내가 왜 앉아있는가? 오히려 누워있어 보자.’라고 생각하여 누워있는 것처럼(...)"

늘 급하게 걷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급하게 걷는다. 그 습관을 고치는 방법은 지금 내가 급하게 걷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천천히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반복해서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면 점차 천천히 걷는데 익숙해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강박사고는 특정 상황이나 맥락과 연관된 습관의 하나일 뿐이다. 정반대의 사고를 인위적으로 해서 습관화를 해제하고 새롭게 습관화를 시킨다.

어떠한 마음의 작용이 일어나더라도, 사실 그것은 마음의 습관이다. 그것이 실제 인과관계와 상황적 내러티브를 필연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같은 상황이라도 그게 다른 경우에는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는 사실을 깅거하라.

예를 들어, 누군가를 해치려는 생각이 일어나면, 그 즉시 반대로 그 사람에 대한 연민심, 애정의 마음, 그 사람의 행복을 기도하는 생각을 일으킨다. 실제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의 태도와 상관없이 친절한 말과 인사를 건네고 선물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불안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이 실제가 아니라는 확신을 일으킨다. 자꾸만 손을 씻고 싶은 강박이 일어나면 반대로 손을 씻지 않거나 손을 더럽힌다.

 

 

5. 집중력을 훈련시킨다.

강박사고가 일어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사실 마음을 통제하고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조금도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 미쳐날뛰는 원숭이와 같다.

내가 원하는 대상이 원하는 만큼 집중하지 못 한다.

내가 원할 때 작동하지 못 하고, 내가 원할 때 쉬지 못 한다.

왜냐하면 마음이 조금도 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납고 날뛰는 원숭이라도 길들일 수 있는 것처럼 이 마음도 충분히 조련할 수 있다.

"수행승은 이빨을 이빨에 붙이고 혀를 입천장에 대고 마음으로 마음을 항복시키고 제압해서 없애버려야 한다. 그가 이빨을 이빨에 붙이고 혀를 입천장에 대고 마음으로 마음을 항복시키고..."

호흡에 대한 집중, 염불, 기도, 절, 독경, 요가 등등 마음의 유연성과 힘을 기르는 다양한 수련법들이 있다.

이 수련법들을 평소에 습관적으로 훈련하면 마치 몸의 근육 트레이닝과 같이

이 마음에도 근육이 생기게 된다. 근육이 없을 때는 조금만 움직여도 지치고 힘들고 원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지만 충분히 숙달되면 근력이 생기고 유연성이 생겨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 마음도 반복 훈련을 통해 충분한 근력과 유연성이 생기게 되면, 내가 원하는 대로 사고를 조정할 수 있게된다.

원하는 것에 원하는 만큼 집중할 수 있고, 원할 때 쉬게 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멋지겠는가?

마음을 마음대로 쓰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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